시련을 통해 믿음이 깊어진다

September 28, 2017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 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마14:28-33)

 

본문 해설

 

예수님은 인기가 많은 설교자, 강연자이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혁명가요 민중의 새로운 지도자로 보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에 몰렸습니다. 그는 어디를 가나 많은 인파를 거느리고 다녔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인기는 당시의 정치가뿐만 아니라 종교지도자들에게도 위협이 될 정도였습니다. 어느날도 예수님은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이 바빠서 한적한 곳으로 잠시 피신을 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이 알고 그를 찾아와 그의 곁으로 모였습니다. 그것은 몇백명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2만여명이나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자 없는 양같이 그들을 민망히 여기셔서 여러가지로 많이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저녁이 되고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이 없기에 많은 사람들을 돌려 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2만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줄수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단 떡5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먹은 사람은 오천명이나 되었는데 이것은 여자와 어린아이를 포함하지 않은 숫자입니다.  이것이 ‘오병이어’로 알려진 유명한 기적입니다.  사람들은 많이 놀랬을 것입니다. 그의 강연이나 설교도 놀라웠지만, 그가 일으킨 기적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강제로 붙들어 왕으로 옹립하려고 했습니다. (요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 Jesus, knowing that they intended to come and make him king by force, withdrew again to a mountain by himself. 한편 제자들은 그현상을 즐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유명하신 분에게 선택되었고, 예수님만 높은 자리에 가시면 자기들도 고위직에 오를지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허왕된 욕심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피해 혼자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에 있었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새벽3시에서 6시 시 사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갑자기 풍랑이 일고 파도가 일어나 배에 있었던 제자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칠흙같이 어두운 물 위를 누군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유령이다. 귀신이다”라고 소리쳤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비명을 지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얼른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나다. 나니까 두려워 말아라” 제자들은 긴가민가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여 정말 주님이세요? 정말 주님이시라면 저에게 물위로 걸어오라고 말씀해 주세요”. 예수님께서 말씀 했습니다. “오너라 베드로야”. 베드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까만 물위로 자신의 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육지처럼 저벅저벅 예수님께로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얼마못가서 거센 바람소리를 듣고 파도를 보자 겁이 났습니다. 그리고 물에 빠졌습니다. 베드로는 급한 나머지 소리쳤습니다. “주님.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예수님께서는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잡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리고 베드로와 예수님이 배 안에 오르자 바람이 잔잔해졌습니다. 배 안에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 경배하며 말했습니다. “주님은 사람이 아니시고,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 시련은 믿음을 더욱 깊게 만든다.

 

성경은 예수님이 비록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주천지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에게는 기적이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으되 그분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들어본 기적만도 대단히 많을 것입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 장애자를 낫게 하신 기적, 앞 못보는 사람을 보게 하신 기적, 죽은 사람을 살리신 기적,…. 오늘 본문 전의 오병이어의 기적, 그리고 물위를 걸으신 기적.’ 그 외에도 많은 기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법칙 아래 있는 제한된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단지 사람으로만 생각한다면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연 법칙을 초월해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초자연적 기적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다는 것은 ‘화학반응의 법칙’으론 설명할 수 없습니다.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2만여명을 먹였다는 것도 ‘질량 보존의 법칙’의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물위를 걷는다는 것도 ‘중력, 부력의 법칙’을 아는 우리로서는 그야말로 기적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만드시고, 자연법칙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다르신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범주로 이해하려고 하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믿기 어려운 일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시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 과신 및 자랑을 하려고 기적을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베푸신 모든 기적의 전후문맥을 살펴보면 모든 사건 하나하나에 의미와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앞전의 사건인 오병이어로 2만명을 먹이신 기적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그들의 육적인 필요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배가 고파서 불쌍히 여기셨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일으키셔서 몇 개의 떡과 고기로 수많은 인파를 먹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기적을 통해 그들에게 알리고 싶으셨던 것이 있었습니다. 물론, 초자연적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신 것이기도 하지만,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이 ‘생명의 떡’임을 말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광야에서 구약시대의 사람들이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던 것처럼 하늘로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으로 자신에게 오는 사람들을 굶주리지 않게 하시겠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요6:33-35)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For the bread of God is he who comes down from heaven and gives life to the world." "Sir," they said, "from now on give us this bread." Then Jesus declared, "I am the bread of life. He who comes to me will never go hungry, and he who believes in me will never be thirsty.

 

그렇다면 그 이후에 ‘물위로 걸으신 기적’을 통해 말하고자 하신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 기적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왜 갑자기 풍랑이 일게 하시고 바람과 파도로 제자들을 곤란하게 하신 뒤에 물위를 유령처럼 걸어 오셨던 것일까요? 일차적으로 제자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물위를 걸으신 기적은 제자들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앞의 오병이어의 기적은 공동체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면 물위를 걸으신 사건은 배안의 제자들만 볼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새벽3시경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제자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의도처럼 제자들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분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33절) Then The disciples worshiped him “You really are the Son of God” They exclaimed.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육적인 양식, 영적인 양식만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어려움과 환란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그것을 알려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2. 시련은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물위를 걸으신 기적의  또 다른 목적은 제자들중에 베드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 값진 경험을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 베드로가 물위도 걸어보고, 바람이 무서워 빠져보기도 하고, 또 그곳에서 건짐받기도 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그의 인생에서 참으로 값진 경험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과 달리 유독 베드로에게 많은 기적의 경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다른 제자들과 함께 경험한 것도 있지만 베르로와 소수만이 체험한 것이 많습니다. 변화산에서 변모하신 사건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물위를 걸은 것은 베드로에게만 있었던 독특한 체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베드로에게 이런 경험을 주시고자 했던 것일까요?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리더가 될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목회자로 초대교회를 이끌어 가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내, 외적으로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소용돌이, 분열의 바람, 외부에서 일어나는 거센 파도와 같은 핍박, 요동치는 위협들을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믿음으로 버텨보고 걸어보기도 하지만, 때때로 모진 바람에 못이겨 빠져 실패 할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건져 주시고 일으키시고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베드로라면 인생에서 가장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면 물위를 걸은 사건이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죽음의 강과 같은 곳에 예수님 믿고 자신을 던졌고, 실제로 믿음으로 기적을 경험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교부로 살면서 많은 세파를 겪을 때마다  물위를 걸어오시며 다정히 “베드로야 이리 와라””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시면 자신을 건져 주신 주님과 그 깊은 밤이 생각이 났을 것입니다. 자신의 친구를 잃고, 복음을 전한 이유로 감옥에 갇혀야 했으며, 히브리파와 헬라파 사람들이 분열하며 교회가 쪼개지려는 상황 가운데 있을 때, 이스라엘에 대대적으로 피바람이 불며 핍박이 몰려 올때도 베드로는 그 깊은 밤을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베드로야 이리와라.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느냐”라는 말씀을 기억해 내었을 것입니다.

시련은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시련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처럼 우리 각자를 향하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과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우리를 훈련해 가십니다. 우리는 시련이 힘들고 무서워 피하고 싶지만,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고, 풍랑이는 파도속에서 주님의 따뜻한 음성과 격려의 말씀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풍랑에서 실패도 해보고 넘어져도 보고 물에 빠져도 보지만 그곳에서 건지시는 예수님의 손길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더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3. 시련을 만날 때 벗어나기만 바라지 말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제가 가지고 있는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왜 다른 제자들은 배에 가만히 있었는데, 유독 베드로만 예수님께 자기도 걷게 해달라고 하면서 시꺼먼 바다에 자신을 던졌을까 하는 것입니다. 대게 이런 환란을 만나면 빨리 풍파가 지나가길 바라면서 피난처에 안전하게 숨길 바라지 풍랑이는 소용돌이 한복판으로 자신을 던지며 더 어려운 곤경으로 도전하지 않는 것이 일반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내니 두려워 말라. 안심하라”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라면 빨리 배에 올라 오세요. 그리고 파도를 안정시켜 주시고 이 곤란한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게 해 주세요”라고 말할 것 같은데, 베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섭게 이는 파도와 바람보다도 예수님께 더 집중하고, 예수님께 자신을 맡기면 도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여. 만일 주시거든 제게 물위로 올라 걸으라 해 주세요” 특이한 상황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어려운 시련에서 겪는고통보다도 주님께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도전이 그에게 귀한 경험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즉, 도전하지 않으면 은혜로운 경험도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려운 상황속에서 빨리 벗어나기만 바라고 피난처로 피하는 것보다 그 속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극한 어려움 속에서 베드로처럼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잠시 믿음으로 걸었지만 파도가 너무 무섭고 바람이 두려워 실패했습니다. 믿음이 적어 의심하였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는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베드로가 가진 경험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처럼 걸어보지도 못했고, 물에 빠졌지만 돕는 따뜻한 예수님의 손길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구경꾼으로만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비록 물에빠져 실패하기도 했지만, 물 깊은 곳에서 건짐받는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믿음이 적기 때문에 의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는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며 더 한걸음 주님께 다가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흔히 목사님들이 이 본문을 두고 설교할 때 고난가운데서 상황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라고 합니다. 믿음이 적어 의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정말 파도와 풍랑이는 고난의 상황에 있으면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즉시 건져 주셨지만, 상황이 오래 지속되고 갈수록 악화되면 정말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파도가 겹치듯이 상황이 더 악화되고 도무지 희망조차 보이지 않으면 믿음이 적어지고 의심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즉시’ 건져 주셨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지나도 더 바람이 모질게 불고 파도가 거세지면 포기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은 13년동안 고난가운데 있었다고 하지만 요셉의 신앙이 우리의 신앙이 아니듯이 우리가 요셉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욥처럼 고난이 겹쳐와도 견딜 자신이 없습니다. 베드로처럼 ‘즉시’ 건져주시기만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즉시’라는 것은 죽기직전의 상황입니다. 물에 빠지면 죽게 되니까 즉시 건져주실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즉,  죽기까지 내버려 두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죽기전에 모든 것을 체념하고 주님의 은혜만 의지할 때 우리에게 손 내미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혜와 신뢰를 모두 포기하고 주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 주님의 때에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and call upon me in the day of trouble; I will deliver you, and you will honor me." 여기서 하나님은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상황가운데 우리를 건지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의 은혜를 찬송하고 영광돌린다는 것입니다.

 

 

 

결론 및 적용

 

오늘 본문에서 주는 핵심 메시지는 시련은 우리의 믿음을 깊어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이 깊어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가 나중에 어떤 상황이 와도 믿음으로 승리하길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주도하셔서 베드로를 물위로 초청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많은 시련이 있을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Consider it pure joy, my brothers, whenever you face trials of many kinds, because you know that the testing of your faith develops perseverance. Perseverance must finish its work so that you may be mature and complete, not lacking anything. 시험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제자들도 하나님을 경험하였지만 베드로와 같지는 않았습니다. 무섭고 두려운 상황에서도 예수님 바라보고 자신을 던졌던, 도전했던 베드로는 비록 실패하였지만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났습니다. 죽기전까지 두셨다가 그를 건지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당할 만큰 의 시련을 주시고 이기기를 바라십니다.  이제 기지도 못하는 아기가 일어나 걷겠다고 용을 써보는 아이를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는 아이의 뼈의 발육에 안좋으니까 절대 허락하지 않습니다. 아기는 넘어져야 정상이고 또 부모도 넘어지도록 놓아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기가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는 해도 매우 귀여울 것입니다. 나아가 아기가 억지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 부모로선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즉시 손을 잡아주지 않겠습니까? 이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을 보면서 견딜만한 믿음이 있으면 기다려 보시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즉시 잡아주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고난가운데 오래 두시면 여러분에 대한 기대가 있으셔서 그렇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때에 즉시 힘을 주시고 건지실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 믿으시고 바라보시면서 더욱 깊어지는 신앙생활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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