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를 오래 믿었는데 변화되지 않을까?

August 31, 2017

왜 변화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변화되고 싶어한다. 옛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미숙한 상태에서 성숙으로 나아가고 싶어한다. 그런데 나아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변화되지 않는 자신을 보면서 마음상해 하고 힘들어 한다. 청소년, 청년, 장년기를 거치면서 어린아이의 철없는 모습을 벗어던져 성숙하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여전히 나이는 먹고 있는데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 없는 것을 보고 실망을 하게 된다. 포용할 수 없는 것을 품게 되고,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용납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용납과 배려의 마음을 갖고자 하는데 여전히 소아적이고 이기적인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서 마음 아파한다. 이것은 교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교인들이 변화되고 싶어하다. 처음 믿었을때보다 믿음의 경륜이 쌓이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앞서 오랫동안 믿은 사람들은 믿음도 강하고 성숙할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오래 믿은 사람이나, 새로 입교한 사람이나 비슷한 경우들을 보면서 실망을 한다. 교회를 떠나는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오래 믿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으면서 떠난다. 높은 기대감을 가졌다가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과연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우리의 옛 모습을 버리고 새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성경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이라 약속하고 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성령의 열매가 맺혀 우리의 성품이 변화될 것이라 말한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한다. 삶의 방향과 목적이 바뀌어 다른 방향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 약속한다. 그리고 실제로 성경의 사람들이 변화된 사람으로 살았던 경우들을 보게 된다. 이러한 성경의 약속과 변화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는 현대의 우리들은 왜 성경대로, 앞선 선조들처럼 변화되지 않는 것일까? 왜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는데도, 믿음생활을 꽤 오래 했는데도 변화되지 않는 것일까?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 처럼 되고 이 땅을 살고 싶어하는데, 갈망은 있는데 왜 변화 되지 않는 것일까? 

 

 

 

변화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변화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랜 신앙생활을 했으면서도 여전히 낙망하고 좌절하며 실패하는 이유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아직도 내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내 삶을 내가 주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 믿을 때에 "예수님을 영접 했다"라고 한다. 영접의 의미는 '받아 들이는 것이다' 무엇을 받아들이는 것일까? 지금까지 내 인생은 나의 것으로 내 인생의 주인은 나였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나의 왕으로, 나의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말의 뜻은 이제 더이상 내가 주인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내 삶을 주도하시고 인도하시면 우리는 충분히 바뀌고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 분은 능력있고 충분히 그러실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의 삶을 아직까지 우리가 인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니까 자꾸 실패하고 좌절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은 자주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비유 된다. 망망대해의 운전을 좌표도 읽지 못하고 운전도 서툰 항해사에게 맡긴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럴 경우 자주 암초에 걸려 부딪히기도 하고 심할 경우 좌초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항해에 능숙하고 경험이 많은 능력자에게 맡기면 그 여행은 안전하다. 이처럼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인생을 부족 투성이인 우리 스스로 헤쳐가려 한다. 아직도 운전대를 붙잡고 좌충우돌하면서 가려 한다. 인생의 멋진 항해사인 우리 안에 계신 주님께 맡기면 우리는 변해 가게 될 것이다. 

 

아주 오래된 바이올린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너무 낡고 오래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과연 음색이라도 제대로 낼까 의아해 한다. 이제 바이올린을 배우는 초보자가 몇번 현을 튕겨 보지만 제대로 소리가 날리 없다. 그러나 훌륭한 연주자의 손에 넘겨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연주자는 오래된 바이올린을 아주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다. 그 악기에서 그 소리가 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악기가 중요하 것이 아니라, 누가 연주하느냐가 중요하 것이다. 우리도 훌륭한 연주자이신 주님께 맡겨지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바이올린을 붙들고 계속 고집하는 것이다. 

 

집은 그대로인데 그 집에 사는 사람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보게 된다. 지금 우릭 가족이 사는 이 집의 원래 주인은 인도 가정이었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때 인도 특유의 카레 냄새가 온 방안에 진동했다. 그분들이 이사하고 우리가 입주한 한달이 되어도 카레 냄새가 벽에 배었는지 냄새가 잘 가시지 않았을 정도이다. 냄새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에서 인도양식이 느껴졌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집에 들어가 산 뒤로 영 다른 분위기의 한국풍의 집이 되었다. 만약 우리가 이 집에서 나갈때 영국 사람들이 들어온다면 특유의 청국장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할지 모르겠다. 집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 사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의 집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안에 누가 주인으로 있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안에 예수님이 주인으로 계시다면 아름다운 향기 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주인이 바뀐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이 주인으로 사시도록 우리를 내어드려야 한다. 자꾸 내가 하려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실패의 연속, 좌절과 낙담의 삶의 될 것이다. 마음의 조타실에서 주님이 항해사가 되도록, 악기를 연주하는 분이 주님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집안에 주님이 주인으로 사시도록 내어 드려야 한다. 그렇다면 저절로 우리가 변해 갈 것이다. 변해가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주인으로 내어드린다는 것은 주님과 의논하는 것이다. "주님, 이런일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세요? 주님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시지요? 이런 일을 겪고 있습니다. 주님이 일하셔야 합니다. 저는 할 수 없어요. 주님이 하셔야 합니다." "혹시 다른 뜻이 있으신가요? 왜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나는지 알수 없어요. 주님 뜻대로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뒤에는 주님이 일하실 것이다. 가만히 있어 주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보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 자아가 너무 강하다. 우리의 우리의 유익만을 구하는 욕심이 너무 많다. 그래서 우리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의 생을 주도한다면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안에 계신 주님이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구석에 계시지 말게하고 정말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주도하시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은 멋지게 항해할 것이고, 아름다운 소리를 낼 것이며 성령의 전으로 거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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