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2장

March 17, 2017

본문 : 출애굽기 22장
교리 :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재산, 인간관계, 약자를 소중히 여기라고 하십니다.

1.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재산권을 존중해 주라고 하십니다.

재산권 침해(1-6절)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재산을 소중히 여기고 도둑질 하지 말라고 8계명에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더 나아가서 이웃의 재산에 피해를 입혀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만약 피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보상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재산권 침해와 관련해서 고의적으로 하는 경우와 부주의함으로 과실해서 침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첫째로, 고의적인 도둑질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1-4절) 도둑질과 관련한 법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두가지입니다. 우선, 손해를 입히면 반드시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원래 손해를 입히면 두배로 보상을 해야 하는데 소나,양을 도둑질 했으면 5배, 4배로 보상하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소나 양은 다른 것에 비해 보상의 기준이 높을까요? 이스라엘은 목축업을 했기에 당시 소와 양은 직접적인 생계수단이었습니다. 소, 양을 잃으면 생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또 소나 양은 가축 이상의 가족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잘 훈련된 소를 잃는 것은 큰 손해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보다 보상기준이 더 높은 것입니다. 고대법정에서는 가해자에게 징역 및 형벌을 선고하지만 피해자의 억울함에 대해서는 많이 고려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피해자의 정신적, 재산적 피해를 고려하는데 더 치중이 되어 있습니다. 현대법에서도 가해자는 징역, 금고 등 벌을 내리지만 피해자에게는 관대한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피해자의 억울함을 최대한 고려해서 보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밤에 들어온 도둑은 정당방위가 인정이 되고, 낮에 들어온 도둑은 과잉방어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도둑이라도 그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의 피의자의 인군도 소중히 여기라고 하신 것인데 당시 고대사회에서는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었던 법이었습니다.
둘째로, 부주의하게 다른사람의 재산에 피해를 입히는 경우였습니다.(5,6절) 우선 자신의 가축이 다른 사람의 밭에 들어가 농작물에 피해를 줄 경우입니다. 주인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이. 뭘 그런 것 같고 그러세요, 난 잘 몰랐어요.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내 책임 아닙니다" 이럴 경우라도 반드시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농사짓는 사람의 자기의 밭에 불을 놓을 경우, 다른 사람의 밭에 불이 옮겨 붙어 피해를 줄 경우입니다. 이경우에도 "내가 안 그랬어요. 바람이 저절로 분 것이지...내 책임이 아닙니다"라고 할 수 없었고 반드시 배상을 했어야 했었습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는 것은 피해자의 억울한 심정을 늘 배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짐승의 경우에는 1:1로 배상할 때 대충 배상해서도 안되고 자기의 가축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배상은 언제나 자기 중심적이기에 자기의 소유 중에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손해를 입힌 사람이 손해를 본 사람의 재산 뿐 아니라 정신적 피해도 최대한 고려해서 배상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었습니다.

2. 하나님은 물질보다 인간관계를 더 소중하게 여기라 하십니다.

보관, 임대, 차용(7-15절)
다음으로 보관사고 및 임대, 차용시 발생하는 갈등의 문제점을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보관사고, 즉 이웃에게 맡긴 것을 잃어 버렸을 경우입니다.(7-13절) 고대사회에서는 은행이 없었기에 개인의 재산을 이웃에게 맡기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맡긴 집에 도둑이 들 경우가 있습니다. 도둑이 잡히면 도둑이 배상하면 되지만, 도둑이 잡히지 않을 경우 난감하게 됩니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손해 본것을 보상 받을까요? 재산을 맡아둔 사람에게 배상을 받아야 할까요? 맡은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배상해야 한다고? 미쳤냐? 내가 맡아준 것도 감사할 줄 알아야지....내 책임이냐? 내가 친절해서 호의를 베푼 것 아니냐? 염치가 있어야지" 이럴 경우 다툼과 갈등이 있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둑이 잡히지 않으면 맡은 사람은 재판장 앞에 가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죄가 없다는 판결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재판과정을 거치게 하신 이유는 인간관계를 깨지지 않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 였습니다. 물건을 맡긴 사람이 아무래도 의심할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깨끗하게 재판을 거쳐서 서로의 신뢰관계에 금이 가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재산, 물질보다 인간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임대, 차용에 관한 법입니다(14,15절) 이웃에 가축을 빌렸는데, 그 가축이 다치거나 죽을때가 있습니다. 이럴때도 난감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빌린사람이 빌려준 사람과 함께 있었을 경우 배상할 필요가 없지만, 빌려준 사람과 같이 있지 않았다면 보상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로 비교하면 친구에게 자동차나 연장을 빌렸을 경우에도 비슷하게 적용해 볼 수 있는 법입니다.

혼전성관계 :
하나님은 공동체 안의 성폭력 행위를 용납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었습니다. '성'과 관련해서 남자가 힘으로 제압해서 강간할 경우에는 그 남자는 반드시 처벌하라고 하셨습니다(신22:25-27). 그러나 서로 합의하에 결혼 전 성관계를 했을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자가 처녀를 꾀어 동침한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경우에는 남자가 신부의 몸값을 신부의 아버지에게 지불하고 반드시 아내로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의 성적 쾌락에 탐닉하기 위해 여자를 마음대로 범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법이었습니다. 처녀의 아버지가 남자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딸을 주려 하지 않을 경우에도 남자는 신부의 몸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자는 매매의 도구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매매금이 아니라 신부의 가정에 피해를 준 법적인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결혼전에 있는 딸의 법적 책임은 아버지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이성관계에 있어서 거룩하길 바라십니다. 오늘 현대사회의 문란한 성문화에 기독교인들은 법의 원리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적 쾌락으로 상대를 경홀히 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거짓숭배 :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무당을 찾아 자신의 미래를 점치는 것, 길흉화복을 구하고 액운을 떨치려는 것등은 하나님이 아닌 귀신에게 자기의 미래를 맡기는 무서운 불신앙으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입니다(레20:26,27절). 또 짐승과 성관계를 하는 것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싫어하시는 행위입니다(레18:23).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 숭배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바알숭배를 하면서 신전이나 무대에서 이런 짐승과 교합하는 행위를 했다고 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는 행위였습니다.

3. 하나님은 사회적 약자들을 형제로 대하고 돌보라고 하십니다.

약자보호 :
하나님의 관심은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있었습니다 당시에 가장 연약한 사람들은 경제적 책임자인 남편이 없거나, 돌볼 부모가 없는 고아들이었습니다. 가족이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약한자를 동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의무였습니다. 이사람들을 위해 추수때에 곡식을 남겨 두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도 했어야 했습니다. (신24:19-21) 그리고 칠칠절, 초막절 등 절기때에 나온 수확 및 매3년마다 소득의 십일조를 모아서 성안에 저장했다가 이들을 먹여야 했습니다(신14:28,29). 오늘날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헌금 전액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위와 같은 원리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인데, 교회의 책임을 감당하는 귀한 일이라 생각이 됩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볼것은 고아 및 과부 외에도 하나님께서 이방 나그네를 보호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출애굽할때 함께 한 이방 거류민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가족처럼 대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레19:33, 34) "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영국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이 말씀에 대해 더 경험적으로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외국인으로 다른 나라에 이민자로 살때 외로움, 차별대우, 위축감 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감정을 교훈삼아 다른 이민자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이민자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공경 :
위의 본문(21-27절)에서는 사회 하층부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28절에서는 사회 상층부 사람들에 대해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지니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물론, 불의하고 부패하며, 약한자를 고려하지 않는 리더에게는 의로운 분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리더는 존경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적용 : 삶(사 + ㄻ)은 사람과의 관계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공동체와 사회를 이뤄서 함께 살아갑니다. 사람이 사람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최초의 가족에서 친구, 이웃, 사회, 국가로 나아가며 공동체를 이뤄 함께 더불어 살아갑니다. 인간사회에서 살다보면 기쁘고 행복한 일들도 있지만 다툼과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네 이웃을 네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람간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의 문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을 가르쳐 주시면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지 교훈해 주십니다. 당시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 주신 시민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 법의 원리와 정신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피해를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최대한대로 배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배나 5배를 말씀하신 것은 정신적, 재산적 모든 것을 고려해서 그들의 마음을 달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인 죄를 가지고 있어서 모든 것에 이기적으로 행동하려 합니다. 케임브리지 한인교회 교우들은 하나님의 법의 정신을 마음에 새겨서 우리의 권리만 주장하지 말고 상대방의 상처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약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연약한 우리를 그렇게 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제사장 나라된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13:34,35) "A new command I give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By this all men will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if you love one an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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