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1장

March 16, 2017

본문 ; 출애굽기 21장
교리 : 하나님의 법은 약한자들 돌보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가해자를 용서하는 사랑의 법입니다.

율법에는 세가지 종류의 법이 있습니다. 도덕법(moral law, 십계명), 시민법(civil law, 사회법), 의식법(cermonial law, 제사법)이 그것입니다. 도덕법은 영구적이고 시민법은 42개의 판례법으로 당시 시대 상황에 적용되며, 의식법은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돌아가시면서 성취하신 법이었습니다. 21장부터 언급되는 시민법은 오늘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여러면에서 어색하고 현대 문화와 잘 맞지 않는 법입니다. 시민법은 당시 고대근동에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상황에 맞춰 주신 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법은 당시 고대 근동 국가의 법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법이었습니다. 오늘은 본문에서 가르치고 있는 법의 원칙과 정신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고 배려하셨는지, 또 오늘 우리에게 그 법의 정신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법은 약한자를 돌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20장에서 십계명을 공포하신 뒤에 21장부터 23장까지 시민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종에 관한 법(1-11절)입니다. 왜 하나님은 시민법중에 가장 먼저 종의 법을 가르쳐 주셨을까요? 종의 법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종의 법을 가장 먼저 언급한 이유는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연약하고 가난한자부터 특별히 존중하고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고대사회에서 종은 가장 천대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대사회는 인권유린이 심각해서 노예들은 가축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종에 관련된 법 부터 처음 언급하심으로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며 대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동안 애굽의 노예생활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노예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았을 것입니다. 노예 생활의 비천함과 억울함을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자신들이 노예였던 때를 생각하며 다른 종들을 사랑으로 대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히브리 종들의 특징은 다른 고대근동 국가와 달리 '자발적인 종'들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강제나, 타의로 종이 되는 것이 아니었고, 극도의 가난과 경제적인 이유로 살기 힘들어 자원하여 종이 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히브리 종들은 Slave가 아니고 Servant 였던 것입니다. 그들중 대부분은 빚을 갚을 능력이 없거나, 너무 살기 힘들어서 잘 사는 집에 들어가 종 되기로 희망했습니다. 주인의 측면에서 보면 종을 포용한다는 것은 그의 자비로운 행위였습니다. 주인은 그들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할 뿐 아니라 생활의 안전을 보장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종을 둔 주인들에게 종들을 하대하지 말고 동거인 처럼 여기라고도 하십니다.(레25:39,40) 다시말해 히브리 종들은 종의 표현을 쓰고 있긴 했지만 종이 아니었습니다. 그 집의 동거인이었던 것입니다. 특이할만한 사실은 종들이 영원토록 종이 되는 것이 아니었고, 종들에게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는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즉, 종들이 6년간 일하다가 7년째에 주인은 종에게 자유를 주어야 했습니다. 자유를 주며 돌려보낼때에도 빈손으로 보내면 안되었습니다.(신15:11-15)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 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 하나님의 종과 관련된 시민법은 연약하고 가난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따뜻한 법이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우하듯이 사람들도 서로 사랑으로 대우하라는 것입니다. 고대근동국가의 법에서 함무라비 법전(기원전 1792년에서 1750년에 바빌론을 통치한 함무라비 왕이 반포한 고대 바빌로니아의 법전)등 다른 주변국가들의 법과 이스라엘의 시민법(노예법)과 비교하면 이스라엘의 것은 그야말로 획기적이고 충격적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법에서는 노예의 인권과 생명이 존중받을 뿐만 아니라 7년째에는 자유를 주라는 파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예를 가족처럼 대한다고? 주인이 그런 수고를 해야 한다고? 노예들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재산도 나눠주야 한다고? 세상에 그런 나라가 어디있어?"라는 것이 다른 근동국가에 사는 사람들의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그 소문을 들은 타국의 노예들은 이스라엘을 부러워 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국가들과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신정국가'였습니다. 주인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 및 "거룩한 백성"들로 하나님이 사람들을 사랑하듯, 사람들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을 법으로 통치되는 나라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그의 백성들에게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즉, 율법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해당됩니다.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대접받고 싶은 것처럼 대접하라는 것입니다.(참고 마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나라의 위정자는 통치를 받는 국민들을 존중해야 하고, 고용주는 고용인들의 인권을 존중하며 힘있는 자는 약한자를, 재산이 있는 자는 가난한자를 돌보며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법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십계명중 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이부분을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생명이 존엄하기에 생명 살인하는 것을 엄격하게 다루라는 말씀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사람죽이는 일과, 유괴하는 일이 흔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생명경시사상이 편만했기에 고대사회에서도 법으로 생명죽이는 일에 대해 엄격하게 다루기도 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도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율법은 더욱 철저하게 사람의 생명을 살인하는 경우에 대해 엄격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창9:6) 사람의 생명을 살인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시민법에서는 그와 비슷할 정도로 부모를 무시하거나 때리는 사람도 사형에 해당하다고 규정합니다. 이것이 부모공경을 사람에게 주신 율법중에 가장 먼저 주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불신자보다 더 악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딤전5:8).

시민법에서는 과실로 다른 사람을 살인한 경우에는 피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고의가 아닌 우발적이거나 실수로 살인하게 된 경우가 있을텐데 이때에는 죽음을 모면할 수 있도록 도피처로 피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당시 도피처는 3곳으로 32Km 안에 반드시 설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한 심의를 거쳐서 고의가 아닐 경우에 그들의 생명은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도피처를 마련하신 이유도 인간의 생명은 고귀한 것으로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싶어 하셨습니다. 인간생명은 존엄하기에 하나님이 계명으로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법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폭행과 상해에 관한법(18-36)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사회에서 약한자가 무리하게 피해 받는 일이 없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피해를 입은 사람의 보상받을 권리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피해자가 완치될때까지 가해자는 보상해야 했고(18,19절) 가해자는 말로만 아니라 정신적, 물질적으로 피해자에게 보상해야 함으로, 하나님은 연약한자를 보호하시며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부주의하게 소를 관리함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게 된 경우에 소의 주인은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28-31절) 고의가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자기가 잘못한 점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함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에 억울한 피해가 없도록, 또 피해를 입으면 보상 받아야 하는 법규였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동형 복수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23-25절) 그런데 이 부분은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용납하기를 바라시는데, 어느정도의 복수를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의 성품과 불일치 하는 것아닐까요? 위의 명령은 위와 같은 의문을 충분히 갖게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하시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말씀은 지나친 복수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받은 것보다 더 과하게 보복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손해를 입은 것보다 더 돌려주고 싶은 복수심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자기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했다면 그사람의 눈에서는 피눈물 나야 한다는 마음이 사람의 복수심인 것입니다. 50을 억울하게 손해 봤다면 100으로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손해를 입은 것에서도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맞지만, 정말 그렇게 용서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면, 손해 본 것 만큼만 배상을 요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동해보복법'이라고 합니다. 범죄에 상응하는 만큼만 처벌을 요구하고 배상을 요구하라는 것이지 만약 가능하고 할수만 있다면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이 법의 정신입니다. 이것은 예수님도 더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5:38-40)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적용 : 7년전인가 우리교회에 레위기를 전공해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에게 "그 어려운 레위기 전공자이시군요? 레위기 전공자는 처음 봅니다. 공부하면서 레위기가 어렵지 않던가요?"라고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아뇨. 목사님. 저는 레위기를 공부하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레위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법을 보면서 하나님은 참 따뜻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의 전적으로 동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을 이스라엘백성들 중에 사회적 약자들이었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희년제도 및 여러가지 복지들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잘 모르거나 표면적으로 알기에 그 깊은 내면에 있는 부분을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끔 고국 대한민국에서 들려오는 뉴스를 듣게 될때마다 마음 아픈 적이 있습니다. '지하철 사고로 숨진 아들 가방서 '컵라면' 보고 오열한 아버지', '백화점 모녀 갑질 논란', 등의 뉴스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가진자가 없는 자 무시하고, 힘센 자가 약한 자 경시하는 사회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흐름의 나라'입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강한데서 약한데로, 부한 곳에서 가난한 곳으로 사랑이 흘러가야 합니다. 피의 흐름이 막힐 때 합병증이 생기듯이 흐름이 막히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케임브리지 한인교회 교우들에게서 귀한 나눔과 흐름의 사랑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나중에 각자의 위치에 세우시고 사회 구석 구석으로 부르실때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법이 성취가 되고, 공의가 강물처럼 흘러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고 요구인 것입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암5:24) But let justice roll on like a river, righteousness like a never-failing st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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