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장

March 15, 2017

본문 : 출애굽기 20장
교리 : 하나님은 우리와 더 깊은 사랑의 교제를 하시기 위해 계명을 주셨습니다.

출애굽기는 크게 두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1장부터18장까지는 출애굽에서 시내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고, 19장부터는 40장까지는 십계명과 성막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후반부는 아래와 같은 순서로 이어집니다. 우선 그 유명한 십계명을 비롯해서 규례들이 주어집니다.(20:1-23:19)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명령과 약속이 이뤄집니다 (23:20-33) 시내산에서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언약이 이뤄집니다(24;1-18) 성막과 관련된 다양한 지시사항이 이뤄집니다(25:1-31, 35:1-3)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우상숭배의 범죄로 언약이 깨지고, 모세의 중보기도의 과정을 통해 언약이 유지됩니다 (32:1-34:35), 성막안에서 사용될 다양한 도구들이 만들어 지고, 마침내 성막이 완성이 됩니다. (35:4-40:38) 이와같이 출애굽기 19장에서 40장까지는 십계명과 성막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 됩니다. 시내광야 이후 내용은 민수기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이 계명을 주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십니다. 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관련된 것,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관련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상기했던 것처럼 고대근동국가는 다신주의로서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헛된 다른 신을 유무형 어떤 것으로라도 숭배하지 말고 그의 이름을 경외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5절)라는 것은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기에 1,2계명을 어긴다는 것입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아닌 영적인 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계명의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7절)는 것은 이 계명이 알게모르게 범하기 쉬운 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사이에 주신 계명은 다른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부모공경(5), 인간의 생명존중(6), 결혼관계 존중(7), 이웃의 재산 존중(8), 이웃의 명예 존중(9), 인간관계에서 불의한 욕망 금지, 자족하는 태도(10) 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에 대해서는 나중에 레위기 및 신명기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할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위와같이 인간에게 계명을 주셨을까요? 계명을 주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성경은 계명을 주신 이유를 몇가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와 깊은 교제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독교는 계시종교로서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알리셔야만 합니다. 그의 뜻은 사랑이었습니다. 창조 목적도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또 인간들 서로 사랑하라는 그의 뜻을 말씀하시고 그 뜻을 순종하게 함으로 우리와 더 깊은 교제를 하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둘째로, 죄를 깨닫고 멀리 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법이 없으면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에 언약 백성들에게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떠나 자꾸 합리화하고 타협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엇이 죄인지 계명을 통해 정확하게 깨닫게 하시고 싶어하셨던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의 신앙을 지속하고 견고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를들어 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킨 다는 것은 6일동안 열심히 일하고 제정하신 날은 안식하고 쉼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날을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기억하며 지켜야 합니다. '창조와 구속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신5:15) 그가 쉬라고 하신 것에 대한 순종함으로 그가 만물의 주인이심에 대한 고백을 해야 하며, 우리가 쉼을 가질지라도 그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6:33) 그리고 우리가 지금은 세상에서 일하고 있지만 나중에 약속하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것임 안식일을 지키며 기억하고 믿어야 합니다(히4:4-11) 역사적으로 안식일을 경시하거나 문자적으로 잘못 지킬때는 전체적인 신앙이 약해졌습니다. 오늘 현대의 기독교가 그렇습니다. 사회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주일성수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 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떨까요? 신앙이 변질되고 약화 된 것입니다. 반면에 역사적으로 부흥시기에는 주일성수 예배에 대해 철저한 신앙이 있었을 때였습니다. 이와같은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을 유지 및 지속,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한 장치로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법이 무너지면 사회 질서가 무너지듯이 계명울 조금씩 타협하며, 어겨져가면서 우리의 신앙도 무너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법(행동강령)을 주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장엄한 광경으로 임재하신 이유는 그를 경외하고 범죄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십니다.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18절) 장엄한 하나님의 임재 광경을 본 사람들을 무서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중보자를 원했습니다. 신명기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5:24-27)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이시매 불 가운데에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들었고 하나님이 사람과 말씀하시되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오늘 우리가 보았나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육신을 가진 자로서 우리처럼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불 가운데에서 발함을 듣고 생존한 자가 누구니이까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사람들은 죄인이라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죄를 짓기 전에는 자유롭게 하나님과 교제 했는데(창3:8-10) 죄를 지은 이후 그 관계는 바뀐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장엄한 광경으로 나타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셔야 했을까요? 그 답은 20절에 있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율법의 입법자는 평범한 인간이 아닌 엄위하신 만유의 하나님이심을 보이셔서 그들에게 경외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이 법을 어기고 죄를 지을 때 벌이 얼마나 무서울지 가르쳐서 죄를 멀리 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신명기에서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신5:29)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즉 범죄하지 않게 하고 복을 주기 위함이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법이 무섭고 그 형벌의 중함을 알 때 그 법을 더 잘 지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럽국가가 국가 지도자의 부패가 적고 사회질서가 잘 유지되는 것은 법이 엄격하고 위법시 받는 무거운 댓가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솜방망이 처벌일수록 사람들은 법을 경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하나님의 법의 위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법을 어길시에 그 형벌이 얼마나 중하고 무서운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계명을 가벼이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 가벼이, 경홀히 여김으로 그 법의 위반도 너무 쉽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요? 우리는 장엄하고 위엄있으신 율법의 입법자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를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할 수록 우리는 그 말씀을 더 존중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이 계명의 구체적 항목을 주신 이유는 우리를 연약함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0장 22절부터 23장까지는 십계명의 실제적 적용을 다룬 70여개의 항목으로 된 언약서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24장7절에는 언약서를 낭독하게 합니다.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24:7) 하나님은 십계명을 대표적으로 주신 뒤에 그 계명이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즉 '예배하는 방법, 시민법(종,사형,폭행,배상) 소송법(재판법, 곡식 피해에 관한 법) 절기법 등 입니다" 이 법은 레위기와 신명기에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이 됩니다. 예배법(1-4계명)과 관련해서 하나님은 제단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십니다. 제단을 쌓을때 토단으로 쌓고 다듬은 돌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제단 자체가 우상화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대근동 국가의 신전은 화려했습니다. 특별히 제단은 대부분 금으로 만들어졌고, 그 자체가 더 신성시 되기도 했습니다.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보다도 제단이 더 신격화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흙으로 제단을 만들라 하셨고 돌로 만들려면 다듬은 돌로 정교하게 만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게달의 장막으로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즉, 예배와 예배를 받는 하나님이 더 중요하지 예배당 자체가 더 우상시 될 수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제단에 "층계를 만들지 말라" 또 "제사장의 하체를 보게 하지 말라"고 하신 것도 부도덕하고 불경건한 모든 원인을 차단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나중에 성막, 성전을 만들때는 제단에 층계를 만들게 되는데 이때 제사장은 속바지인 고의를 입었습니다.(28:42) "또 그들을 위하여 베로 속바지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두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라"

하나님은 자신을 예배하는 법, 제단 제작에 대해서까지 자세히 시시콜콜할정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신 이유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외적인 모든 것보다 하나님께 집중하시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앙이 약화되고 하나님에 대해 잊을 수록 외적인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씁니다. 중세기독교는 암흑기라 불리울 정도로 신앙에 깊은 침체기를 겪었는데 아이러니하게 그때는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신성시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인간이 만든 화려한 예배당이 신성시 되었습니다. 더 크고 더 화려하게 짓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습니다. 예배당의 오르간, 스테인드 글라스, 성상들...이런 것이 성상숭배, 화상 숭배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외적인 것이 화려해질 수록 내용은 빈약해져 갔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가들은 외적인 것보다 예배의 내용이 중요하다며 예배당을 가급적 심플하게 만들었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헛간이나 창고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건축물, 웅장한 오르간 음악, 거대한 그림들, 정교한 조각들은 하나님보다 인간의 자기 '의'를 갖게 된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조국교회의 현실도 보면 경쟁하듯 예배당을 크고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으면서 심지어는 성전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우리가 성전이지 건축물이 성전이 아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3:16) 마치 중세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배는 다시 개혁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홀로 예배를 받으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은 없는(딤후3:5) 세대는 회칠한 무덤이라 평가 받지 말아야 합니다.(마23:27)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 외에 너무 외적인 것에 집중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마음으로 차단해야 합니다.

적용 : 얼마전 헌법재판소에서 인용한 주문의 내용을 보면서 헌법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문장이었습니다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입니다." 그동안 헌법을 막연하고 어렵게만 여겼었는데, 짧고 간결한 명문장으로 헌법의 가치를 새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 수 있는 존립근거가 됩니다. 그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내는 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교제를 지속할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 계명을 지킴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모두 알다시피 우리는 그 계명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크신 사랑으로 예수님을 통해 율법을 이루셨고, 예수님은 율법의 마침과 완성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와 함께 교제를 지속하기 위함으로, 하나님과 언약한 법을 지켜야 합니다. 케임브지 한인교회 여러분들 모두 헌법으로 나라가 서듯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법을 지킴으로 신앙이 더욱 견고해져가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Whoever has my commands and obeys them, he is the one who loves me. He who loves me will be loved by my Father, and I too will love him and show myself to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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