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

February 16, 2017

 

신학 세미나 자료

 

1강 :  교리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

 

 

 

Ⅰ 교리가 무엇인가?

 

모든 종교에는 교서의 원리나 이치를 정리한 교리가 있습니다. 기독교에도 마찬가지로 믿음의 내용을 정리한 교리가 있습니다. 즉 기독교 교리는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믿음의 핵심적인 내용을 체계화 시킨 것을 말합니다. 교리는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교리는 성경에 계시된 진리를 신앙의 용어로 체계화 시킨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리의 체계를 공부하는 학문을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의 내용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의(Dogma) 와 신조(Creed)는 다른 것인가요? 교리(Doctrine)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우선 교의(Dogma)는 교리들 중에서 교회의 회의와 논쟁을 통해 교회 일반에 받아들여진 것을 말합니다. 교회가 회의를 거쳐 그 교리가 성경적인가를 확인하고 교회의 동의 하에 정립된 것들을 교의라고 부릅니다. 그 다음으로 신경 및 신조(Creed)는 교회의 회의를 통해 결정된 교의를 짧은 신앙고백서의 형태로 요약해 표현한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사도신경(2C), 니케아 신경(325), 아다나시우스 신경(451)등을 말합니다. 이 외에도 하이델베르그 신조(1563) 벨직 신앙고백 (156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8)등이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제임스1세왕 시대에 올리버 크롬웰의 의회군이 승리에 청교도 공화국 수립(1640)을 수립하고1643년 웨스트민스터 회의 소집하여 151명의 청교도들과 교회 개혁을 논의하여 신앙고백서를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1649년에 국회를 통과하여 신자들의 가정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 문답을 비치하고 교육하도록 하기도 하였습니다. 

 

Ⅱ 교리 교육이 왜 필요할까?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목사님, 교리공부가 꼭 필요할까요? 그냥 성경만 읽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성경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교리는 사람들이 만든 것 아닌가요? 삼위일체, 원죄, 자유의지등은 사람들이 만든 용어 아닌가요? 굳이 어렵고 딱딱한 교리를 공부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는 교리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있는 것입니다. 셩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무이한 신앙의 기준이 됩니다. 물론 성경만으로 우리의 신앙을 세워나가는데 완전충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읽을때 많은 어려움을 느낍니다. 교리는 성경을 조금더 쉽고 분명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도구’입니다. 교리는 성경의 계시가 명확하게 열릴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는 훌륭한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교리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교리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세가지로 먼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성경 자신이 ‘교리’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두가지 내용 즉,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믿어야 할 내용(복음 또는 교리)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할 내용(율법 또는 윤리)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두부분으로 나뉘어 지는데 구약과 신약이 그것입니다. 구약은 역사, 율법, 시, 예언이라는 틀로 기록되어 복음과 율법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고, 신약은 복음과 율법의 원리를 뽑아서 교리로 그것을 설명, 적용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설교방식을 보면 구약(복음)의 내용을 교리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로마서와 에베소서 같은 서신서에는 교리(Doctrine)를 먼저 말하고 그 교리에 기초해서 적용(Application)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항상 그런 패턴으로 교리를 설교하고 있습니다. 교리는 진리를 회중에게 선포하고 설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즉 성경의 메시지를 교리로 선포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설교는 항상 교리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와같이 구약을 읽을때에도 그 스토리에서 교리를 발견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구속, 칭의, 타락, 성화, 섭리 등 성경의 메시지에서 교리를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고후3:14,15)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그 수건은 그리스도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참고 요5:39)

 

둘째로, 교리를 통해 신앙의 체계를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오랜 신앙생활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신앙을 시작하는 사람들처럼 신앙의 체계가 잡히지 않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 것에 대한 확고한 신앙의 기초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들어왔고 공부도 했을텐데, 설교 들은 횟수도 상당할텐데 신앙이 자라지 않는 교인들도 많이 보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앙의 체계를 잡는 교리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리는 우리의 신앙의 체계를 잡는데 훌륭한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건축물을 세우는데 골조(뼈대)작업을 한 뒤 시멘트나 벽돌을 붙여 건물을 세워 가듯이 교리는 신앙의 뼈대세우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른 건축자재(교리, 진리)로 건축물을 세워 가라고 권면합니다.(고전3:12-15절) 우리는 반석위에 터를 잡고 올바른 교리(금,은,보석)로 집을 세워 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교리는 인체의 뼈에 해당합니다. 뼈가 없으면 식물인간처럼 흐물거려 제대로 설 수 없듯이 교리는 우리의 신앙의 체계를 세우는 데 훌륭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교리를 통해 잘못된 신학사상(이단)을 경계하고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반짝이는 것이 다 금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치가 있는 귀한 것일수록 모방하려는 모조품이 생겨납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에도 그 가치를 훼손하려는 많은 짝퉁이 있어 왔습니다. 잘못된 교리가 교회의 역사에 침투해서 교회가 홍역을 앓았던 때가 초대교회때붙어 있어 왔습니다. 사단은 진리를 변형시켜 교회에 큰 타격을 입혀 오는데 많은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신약의 사도들은 잘못된 교리가 교회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 경계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골2:4)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바른 교리에 착념하라고 가르칩니다 (엡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Then we will no longer be infants, tossed back and forth by the waves, and blown here and there by every wind of teaching and by the cunning and craftiness of men in their deceitful scheming.”우리는 바른 진리를 배우고, 확신한 가운데 우리의 신앙을 세워가며(딤후3:14) 장성한 분량까지 성숙해 나가야 합니다. 신앙에서 돌이키고 이단사상에 현혹되는 사람들을 보면 교리에 취약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기에 믿음의 변질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Ⅲ  교리 교육이 왜 무시되어 왔을까?

 

교리 교육이 위와같이 중요한데 현대교회는 그동안 교리 교육에 실패해 왔습니다. 이것이 현대교회의 비극입니다. 교리교육의 단절로 인해 선배들의 세대와는 달리 한없이 나약한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마치 사사시대와도 같아 보입니다 (삿17:6, 21:25)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In those days Israel had no king; everyone did as he saw fit. 교단과 교파등 각자가 자기의 소견에 좋은 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판단하며 교육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종교개혁시대에는 철저한 교리 교육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교리교육의 단절로 인해 지금 이 세대는 혼란과 쇠퇴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 삿2:10) 현재 유럽 교회의 몰락의 원인에 대해 많은 분들이 진단하고 있지만 그중에 가장 큰 이유는 ‘Broken the Doctrine”이라고 말합니다. 믿고 있는 교리에 대한 확신이 없으므로 기독교가 더이상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한때는 철저하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소요리, 대요리 문답), 도르트 신경, 하이델베르그 신경에 대한 교육이 교회마다 철저하게 이뤄져 왔지만 지금은 그런 개혁교회의 전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교리 교육이 무시되어 왔을까요?

 

첫째로, 지나친 교리 논쟁에 대한 부작용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오랫동안 소모적인 교리 논쟁에 시달려 온 것이 사실입니다. 교리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본질적이고 중요한 교리가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2차적인것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교리입니다. 즉 삼위일체, 인간의 전적 타락,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이신칭의 등의 교리는 본질적인 것인 반면에 세례와 성찬, 교회의 정치 등은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교리들입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교리에 매달려 몇차례의 회의를 거쳐왔고, 논쟁을 넘어 이단으로 정죄하고 심지어 종교재판도 서슴지 않는 일들을 자행해 왔습니다. 이런 교리 논쟁은 사람들에게 교리 자체에 대한 거부감마저 들게 했습니다. 더이상 교리를 가지고 교파가 형성되어 세력 다툼 하는 것에 대한 강한 염증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런 거부감은 교리에 대한 무관심 현상을 자연스럽게 가져오게 한 것입니다.

 

둘째로, 교리보다도 삶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입니다. 믿음과 행함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불균형은 그가 무엇을 믿고 있느냐보다 무엇을 행하고 있느냐에 더 강조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어떤 신앙인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의 삶은 전혀 다르기에 ‘바리새인’ 같은 사람으로 평가하고 어떤 교리를 가지고 있는지 보다 어떤 삶을 사느냐가 더 중요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불균형에서 오는 페해였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백번도 더 들어도 은혜가 되지 않았는데 그 목사님이 어느날 교회구석에서 청소하는 모습을 보니까 은혜가 넘쳤습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19세기 20세기 이후 뚜렷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런 현상으로 설교의 내용도 교리설교에서 감동설교, 예화설교, 윤리 설교로 바뀌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바른 교리를 추구하지 않고, 바른 교리안에서 삶을 갖고 있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리 교육이 교회에서 사라져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참된 삶을 가져오게 하는 참된 교리에 대한 추구가 있어야 합니다.

 

Ⅳ 교리 교육의 중요성

 

성경전체에 대한 안목을 갖게 하고 우리의 신앙의 체계를 세워가는데 있어서 교리 교육은 필수요건입니다.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교리교육은 우리의 신앙에 큰 중요성을 갖습니다.

 

첫째로, 교리는 성경을 제대로 보게 하는 안목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흔히 전체를 보지 못하고 지엽적으로 사물을 볼때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본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40여명의 저자가 많은 장르를 활용해 기록하여서 전체를 조망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리는 성경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희미한 것들이 걸어다니는 것처럼 뿌옇게 보이는” 것들을 마치 선명하게 보게 하는 안경을 착용한 것처럼 성경의 메시지를 확연하게 보게 합니다. 우주와 인생의 기원, 삶의 목적과 의미, 왜 살아야 하는지,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이 세상에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하나님과 창조의 관점에서 명확한 교리로 제시하며 가르쳐 줍니다. 또 왜 인간 사회에서 폭력과 전쟁이 난무하는지, 범죄가 끊이지 않고 질병이 왜 거듭되는지, 왜 고통이 있게 되는지 인간의 전적 타락의 교리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외에도 인간이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지, 양심의 자유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속죄의 교리로 대답하고 있고, 이 세상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종말의 교리에서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성경의 대답이 바로 교리인 것입니다. 성경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것들을 한데 모아 선명하게 보게 하는 안경의 역할을 하는 것이 교리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색맹 테스트를 할때 안경을 끼지 않으면 뿌옇게 보이는 것들이 안경을 갖다대면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교리를 알게 되면 여러분들이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하여 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보이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교리는 성경을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잠긴 문은 열쇠로 열어야 합니다. 멋있고 화려한 집이라도 그문이 닫혀 있으면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듯이 성경의 아름다운 집을 열고 들어가서 그 안의 진리의 보고를 즐기려면 열쇠가 있어야 합니다. 교리는 이러한 열쇠의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배고픈데 곳간의 열쇠가 없다면 그림의 떡이듯이 우리는 교리를 통해 성경의 풍성한 양식을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족장들을 보면 우리가 이해 안되는 내용들을 접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을 택하셨을까? 아내 사라를 성상납할 정도로 자기의 목숨부지를 생각하는 연약한 가장이고, 야곱은 더한 인물로 그의 일생 전체에서 실수연발인데 왜 그런 사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셨을까?” 여기에서 ‘이신칭의’ 교리가 그들을 이해하는 열쇠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 그들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작정과 예정)와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가는 ‘성화’의 과정도 보게 됩니다. 그외에도 단단하게 잠겨져 있는 듯한 성경의 모든 부분이 교리의 열쇠로 풀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교리는 삶의 지도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성경은 ‘복음과 율법’ 또는 ‘교리와 적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 서신서에서 보다 분명하게 그 둘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로마서, 에베소서 등) 기자는 항상 교리(Doctrine)을 말한 뒤에 적용(Application)을 말합니다. 그 연결 고리는 ‘그러므로’라는 접속사 입니다. 앞의 내용, 교리를 들었기에 그러므로 그 교리에 기초로 해서 삶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른 교리가 있고 그 교리가 적용될때 올바른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교리가 없고 삶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고 구호처럼 외치며 사랑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것은 ‘행동주의’ 또는 ‘율법주의’가 됩니다. 그렇게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자신을 생각하며 좌절하고 다시 결심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먼저는 복음(교리)를 제시하고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교리), 너희도 사랑하라(삶)’ 그러므로 교리를 깊이 이해하게 되면 올바른 삶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리는 가야 할 길을 잃지 않도록 제시해 주는 지도와 같습니다.

 

Ⅴ  어떻게 교리를 공부할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공부해야 할 교리는 무엇이고 어떻게 교리를 공부해야 할까요? 교리를 교육하면서 늘 강조하는 부분이지만 우리는 교리를 7가지(성경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종말론)로 분류해서 공부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이것은 공히 조직신학에서 취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아래와 같은 교리를 공부해가면서 신앙의 체계를 세울려고 합니다. 1) 성경 (계시란 무엇인가? 성경은 영감되었는가? 오류가 없는가? 그 증거는 무엇인가?) 2) 하나님 (존재와 사역, 속성과 성품, 창조와 작정, 예정, 섭리 등) 3) 인간 (원시적인 인간의 상태, 죄의 기원, 선악과를 만드신 목적과 사단을 막지 않으신 이유? 죄의 결과, 죄의 특성, 행위, 구속, 은혜 언약이 무엇인가?) 4) 예수님 (직분과 신분, 속죄와 중보, 속죄의 범위와 특성) 5) 성령님 (존재와 사역, 은사와 열매, 구원의 서정,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양자, 성화, 성도의 견인, 영화, 방언과 치유의 은사? 성령의 은사가 지속되는가?) 6) 교회 (본질과 기능, 교회의 속성, 표지, 정치, 교회의 성례) 7) 종말 (개인적 종말, 우주적 종말, 예수님의 재림, 사후세계인 천국과 지옥, 천년왕국) 위의 분류된 내용으로 앞으로 기독교 교리를 공부할 예정입니다. 위의 내용을 기초로 관련된 질문들과 궁금한 사항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믿음생활하면서 제기되는 많은 질문들을 위의 7가지에 담아 우리는 성경과 씨름하면서 답을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성경 중심으로 교리를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교리의 체계가 확고하게 세워져 견고한 신앙의 체계를 가지고 믿음 생활할 수 있도록 교리 공부에 전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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